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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버스 코스

EQ버스와 함께 백제의 시간속으로 들어갑니다.
각각의 문화유적과 관광지를 미리 관람해보실까요?

준비되셨다면 렛츠~고!

정림사지(定林寺址)

부여 정림사지(扶餘 定林寺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백제의 사찰 터이며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시기(538-660)의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입니다.

정림사지의 대지는 북동에서 남서로 경사진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높은 북동쪽은 깎고, 낮은 서남쪽은 성토하여 조성하였던 것으로 확인되며 또한 정림사지 사역의 남편과 서편은 원래의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는데, 사역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낮아 사찰의 위용이 한껏 과시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림사지의 고고학적 조사 결과 백제시대의 중문, 금당지, 강당지 및 그 북·동·서편의 승방지, 회랑지 등이 확인되었으며 회랑에 접속된 북·동·서 승방지의 배치는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독특한 모습으로 백제지역에서만 나타납니다. 사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은 예불대상이 되는 불상이 안치되는 금당과 부처의 사리가 봉안되는 탑입니다.

또한 정림사지에는 높이 8.3m의 석탑이 있는데, 대한민국 국보 제9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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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산리고분군

능산리고분군은 나성 동쪽 밖에 인접한 산의 남사면에 위치해 있는 백제 왕릉입니다. 총 7기의 고분 중 6기의 고분들은 3기씩 2열을 이루고, 1기의 고분은 6기의 고분에서 북쪽으로 50m 떨어져 위치하고 있습니다.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능산리 고분군은 세 가지 유형의 굴식 돌방무덤이 있음이 조사되었고, 천장 건축방법이 볼트형 천장에서 육각형 또는 사각형 평천장으로 변화하였음이 밝혀졌습니다.

그 중 1호분은 네 벽에는 사신도가, 천장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를 그린 벽화가 발견되어 백제 회화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1990년대에, 백제금동대향로가 능산리고분군의 서쪽의 절터에서 567년에 제작된 석제 사리감과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이 발견은 능산리고분군이 사비시대 백제 왕릉이라는 것을 재확인시켜주었습니다.

능산리고분군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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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단지

백제문화단지는 찬란했던 백제역사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1994년부터 2010년 까지 총 17년간의 역사적인 대장정 끝에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일원 3 , 2 7 6 천 ㎡ 에 6,904억원을 투자하여 백제 왕궁인 사비궁과 대표적 사찰인 능사, 계층별 주거문화를 보여주는 생활문화마을, 개국 초기 궁성인 위례성, 묘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분공원, 충남도민의 기증으로 조성된 백제숲,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백제역사문화관 등 1,400년 전 문화대국 이었던 백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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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

부소산(扶蘇山)은 부여읍 쌍북리, 구아리, 구교리에 걸쳐 있는 해발 106m 고도를 가진 부여의 진산입니다. 평지에 돌출하였으며, 동쪽과 북쪽은 가파르고 백마강과 맞닿았습니다. 부소산의 산 이름은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에 처음 선보이며, ‘부소(扶蘇)’의 뜻은 백제시대 언어로 ‘소나무(松)’의 뜻이 있어, 부소산을 ‘솔뫼’라고 보는 학설이 유력합니다.

부소산은 평상시에는 백제왕실에 딸린 후원 구실을 하였으며, 전쟁때에는 사비도성의 최후를 지키는 장소가 되었던 곳이며 부소산 내에는 군창지, 낙화암, 백화정, 사자루, 삼충사, 서복사지, 영일루, 고란사 등 여러 유적과 유물들이 산재해 있으며, 역사성과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산입니다.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 바위를 가리켜 낙화암이라 부릅니다.
낙화암은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일시에 수륙양면으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하자,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이곳에 와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깊은 물에 몸을 던져 죽은 장소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훗날 그 모습을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절벽에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낙화암(落花岩)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며 낙화암의 기암절벽은 백마강에서 배를 타고 돌아갈 때 더 잘 보입니다. 

자살한 궁녀에 대한 내용이 언급된 최초의 기록은 일연의 《삼국유사》 권1 태종춘추공(太宗春秋公)조인데, 다음과 같습니다.

[百濟古記云『扶餘城北角有大岩, 下臨江水, 相傳云, 義慈王與諸後宮知其未免, 相謂曰“寧自盡, 不死於他人手.”相率至此, 投江而死, 故俗云墮死岩.』 斯乃俚諺之訛也. 但宮人之墮死, 義慈卒於唐, 唐史有明文.] 《백제고기(百濟古記)》에 말하였다. “부여성 북쪽 모서리에 큰 바위가 있어 그 아래로 강물에 임하였는데 서로 전하기를, 의자왕과 여러 후궁은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차라리 자진할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 하여 서로 이끌고 강수에 몸을 던져 죽었다 하므로 세상에서는 타사암(墮死岩)이라고 부른다.” 이는 속설의 와전이다. 궁녀들은 그곳에서 떨어져 죽었겠지만, 의자왕이 당에서 죽었다 함은 당사(唐史)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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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과 궁남지

부소산성(扶蘇山城)

부소산성(扶蘇山城)은 백제의 마지막 왕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사비성(泗沘城)으로 불렸으며 부여군 부여읍의 서쪽에 금강을 낀 부소산에 자리하고 있고 둘레는 대략 2.2km, 면적은 약 74만m2에 달합니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5호로 지정

부소산성은 부소산 정상에 테뫼식 산성을 쌓은 후, 주변을 포곡식으로 쌓은 복합 산성입니다. 부소산성 주변에는 다시 청산성과 청마산성 등의 보조 성이 있으며, 남쪽에는 성흥산성의 지원을 받았고 과거의 군수품 창고 터 등이 남아 있으며, 그 외에도 낙화암과 고란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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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남지

궁남지는 신라 선화공주와 결혼한 무왕의 서동요 전설이 깃든 곳입니다.
『삼국사기』에 “백제 무왕 35년(634) 궁의 남쪽에 못을 파 20여리 밖에서 물을 끌어다가 채우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가운데는 섬을 만들었는데 방장선산(方丈仙山)을 상징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로 보아 이 연못은 백제 무왕 때 만든 궁의 정원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연못의 동쪽 언덕에서 백제 때의 기단석과 초석, 기와조각, 그릇조각 등이 출토되어 근처에 이궁(離宮)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신선사상을 표현한 궁남지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공정원으로 백제의 노자공은 일본에 건너가 백제의 정원 조경기술을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백제가 삼국 중에서도 정원을 꾸미는 기술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관광지이며 7월에는 천만송이 연꽃들의 아름다운 향연인 서동연꽃축제가 열리고, 10~11월에는 다양한 작품으로 꾸며진 굿뜨래 국화전시회가 열려 궁남지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매력적인 곳입니다.

궁남지는 현재 서동공원이라는 지명으로도 불리고 있는데 서동공원 안에 궁남지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동요에 관한 전설은 아래와 같습니다.

백제 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璋). 일찍이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서울(서라벌) 남쪽 연못가에 집을 짓고 살던 중 그 연못의 용(龍)과 정을 맺어 그를 낳았다. 아명(兒名)은 서동(薯童). 그 도량이 비상하고 항상 서여(마)를 캐어 팔아서 생계로 삼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아명을 그리 부른 것이다.

그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善花)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더벅머리를 깎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고는 동네 아이들에게 마를 주며 자신을 따르게 했다. 그리고 노래 하나를 지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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